"폰 위치 착수 30만원, 상대방 위치나오면 20만원."
A씨는 최근 한 사설 탐정을 찾았다. 자신에게 돈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한 지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A씨에게 의뢰받은 B탐정은 소방에서 신고자를 찾을 때 사용하는 '휴대전화 위치값' 방식으로 상대방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문자메시지를 통해 A씨에게 착수금과 위치 확인 시 비용 등을 소개했다.
B탐정은 업무가 모두 종료된 뒤에는 '진행잔금' 명목으로 55만원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는 안내도 했다. 다만 A씨와 통상적인 서면 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다.
이에 A씨는 조사비용 등 명목으로 165만원을 우선 지급했지만, 의뢰는 실패로 돌아갔다. B탐정이 이틀간 조사를 나섰지만 결국 의뢰받은 인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 100만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한 데다 상대방도 찾지 못하게 되자 A씨는 잔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B탐정은 "입금할 시간은 충분히 줬는데, 이제 입금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나"라며 "흥신소 상대로 용감하다"라고 A씨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어 A씨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오거나 지속적으로 문자와 전화 연락을 했다.
결국 A씨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B탐정을 경찰에 고소했다. A씨는 가짜 탐정을 만나 피해를 입었다는 취지로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A씨의 주장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2020년부터 탐정업이 합법화 됐지만, 의뢰금만 받고 잠적하거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등 '무늬만 탐정'이 활개하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2020년 8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이 개정되면서 탐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는 민간조사원이나 흥신소 등 음지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탐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양지로 나온 것이다.
탐정에 대한 수요는 꾸준한 것으로 파악된다. 연인이나 부부간 외도를 확인하기 위한 일부터 채무자나 가족 찾기 등 분야가 다양하다. 탐정이 법적 테두리 안에서 증거자료를 수집해오면 의뢰인이 그 내용을 토대로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명칭 사용이 공식화된 데 반해 탐정을 관리하는 법령은 없다 보니 사각지대가 있는 상황이다. 탐정이 수집하는 자료는 주로 개인의 동선이나 자료 수집 등이어서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수사기관의 업무와도 비슷하지만 정작 소속은 민간에 있는 개인사업자 신분이다. B탐정이 A씨에게 소개했던 소방 위치값 역시 합법적인 방식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정보이고 실제로 알아낼 가능성도 적다.
규모가 있는 일부 대형 협회들의 경우 자격 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발급하고 교육도 실시하지만 역시나 법적 구속력이 없다. 여기에 일부 악덕 탐정들이 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현금으로 의뢰금을 받고 잠적하는 문제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탐정사무소 한 관계자는 "국가 자격증도 아니고 민간 영역이다 보니 누구나 탐정이 될 수 있다"며 "그만큼 부작용도 많다는 뜻인데, 제대로 된 서면 계약서 없이 문자메시지로 계약을 맺는다거나 의뢰금만 받고 잠적하는 가짜 탐정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의뢰를 하는 일 대부분이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기를 당하더라도 외부에 신고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라며 "최근에는 사채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탐정업으로 넘어오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짚었다.
업계에서는 법 제정을 통해 업계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다른 탐정사무소 관계자는 "탐정은 민간이기도 하지만 수사기관과 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공적 성격도 있다"라며 "악용될 경우 그만큼 파급력도 크기 때문에 경찰 등 정부기관의 관리를 받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탐정의 직업 정당성을 인정해달라며 헌법 소원을 내기도 했던 정수상 대한탐정연합회장은 "의뢰금을 현금으로 받고 증거를 남기지 않거나, 업무를 수행하는 척만 하고 잠적하는 등 탐정업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분명 있다"라며 "협회별로 교육을 강화하고 있지만,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매번 탐정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회 문턱에서 걸리고 있다"라며 "법적 테두리 안에서 탐정을 관리하고 제재하는 것이 업계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